땜질 처방 신도시가 국가경쟁력 저해
주택수급난 완화를 목표로 추진 중인 신도시 개발방식이 장기적으로는 되레 집값 불안을 부추기고 주거환경 개선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신도시 개발은 수도권 전체 인구분포와 시설배치 등을 고려, 종합적으로 추진해야 하는데도 수급 문제에만 집착해 무분별하게 개발계획을 쏟아내고 있다. 기존의 택지지구나 인근 신도시에 잇대어 짓는 개발로 난개발을 부추겨 중장기적으로는 주거환경을 악화시키고 일시에 대규모로 개발을 하다 보니 수조원의 보상비가 풀려 투기를 유발, 분양가 자체를 인상시키는 요인이 된다. 반대로 입주시점에는 일시적 물량과잉으로 집값을 급락시켜 사회적 불안을 조성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신도시 개발정책은 주택수급 불안 해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경기 성남 분당과 고양 일산, 안양 평촌등 수도권 1기신도시는 88서울올림픽 전후 도시화의 급진전 등으로 수급불균형이 심화되면서 급등하는 집값을 잡기 위해 주택 200만가구 건설정책의 일환으로 건설됐다. 1기신도시의 경우 베드타운화와 난개발 등의 문제점이 터져 나오면서 신도시 개발이 완료된 뒤 한동안 신도시 개발이 중단되기도 했지만 외환위기에서 벗어나고 경제가 활성화되면서 수급난에 따른 집값 불안이 가중되자 수도권에 2기신도시 건설을, 2기신도시 확대 개발 및 추가 건설 등의 카드는 수급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단기적인 공급 확대에 초점을 두고 있으나 땜질식 처방에 불과하다.
단기에 개별적으로 신도시 개발이 이뤄지다 보니 난개발과 집값 상승, 도시의 정체성 미비 등으로 중장기적으로는국가의 경쟁력을 되레 갉아먹을 수 있다. 신도시는 그동안 대량 주택공급 수단으로 수도권의 만성적인 주택난을 해소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과거 도시에 비해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데도 기여했다. 해외 주택시장을 진출하는 데 첨병이 된 국내 건설사들의 최첨단 주택기술도 신도시 건설 과정에서 쌓은 노하우가 밑거름이 됐다.
이런 긍정적 요인에도 불구하고 신도시 건설에 따른 부작용도 적지 않다. 우선 계획도시로 구상된 신도시가 오히려 난개발의 주범으로 지목받고 있다. 소규모 취락지구가 형성된 땅을 토대로 개발면적을 넓히려다 보니 산과 강의 허리를 잘라내 환경이 파괴되고 콘크리트 더미와 도로로 얽힌 신도시 내 도심은 친환경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친환경도시를 표방한 경기 성남 판교시도시는 수십m 높이의 옹벽으로 앞뒤가 꽉 막힌 반지하 아파트가 즐비하고 고속도로 매연과 골프장에서 날아오는 골프공의 위협까지 받고 있다.
신도시 개발을 대대적으로 표방한 것이 정부 신뢰성을 잃게 만드는 요인이다. 도심 재개발 활성화를 강조해 온 터라 신도시는 상대적으로 위축된 것이 사실이다. 도심 재개발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서울 강북 지역은 물론 강남 지역 등 도심은 새롭게 부각됐다. 여기에 전반적인 부동산 침체기를 맞으면서 앞으로 살아남을 곳은 서울 도심밖에 없다. 반면 신도시의 인기는 지속적으로 추락했다.
현재 서울 도심과 먼 지역일수록 부동산 침체는 심각한 편이다. 경기 화성 동탄과 동탄2신도시, 인천 검단신도시 등에서는 미분양도 엄청난데도 신도시 발표 직후 집값이 급등하던 것과 분위기가 완전 딴전이다. 경기 성남 판교 및 분당, 용인 죽전과 수지 정도의 택지지구까지를 앞으로 살아남을 수도권 택지지구의 마지노선이라고 보는 분석도 있다. 5∼10년 후 도심에서 떨어진 신도시일수록 공동화가 심화 될 것이다.
신도시 개발계획을 발표한 시점은 모두 집값이 급등하던 시기였다. 부동산 폭등기였던 1988년 9월 1기신도시 개발계획이 발표됐고 2002년 수도권 아파트값이 폭등하자 2기신도시 건설 카드를 꺼내 들었다. 신도시 조성을 통해 대대적으로 공급을 늘려 집값을 잡겠다는 의도였다. 실제로 신도시 개발계획을 발표한 직후엔 부동산이 잠시 안정세를 찾기도 했지만 지금은 집값만으로 따지면 안정기로 평가된다.
건설경기 전반을 따지면 부도업체 수 급증 등 오히려 침체가 심각하다. 신도시 건설은 보통 국가의 장래를 좌우할 중대한 사안이어서 공청회 등 다양한 의견을 종합하고 수급계획 등에 맞춰 치밀하게 추진되는 게 일반적인데 공약집에서도 찾을 수 없던 신도시를 지금 같은 침체기에 내놓은 건 정부의 신뢰를 잃게 한다. 검단신도시 및 세교신도시에 대해 기존 신도시와 기반시설에 기대어 개발하는 포도송이식 개발이며 비효율적인 것은 물론 난개발이 불 보듯 뻔하다.
경기 오산 세교신도시는 이미 교통 체증으로 엄청난 사회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경부축을 더욱 과밀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경부축을 가운데 놓고 향후 판교신도시, 광교신도시, 동탄 및 동탄2신도시, 평택신도시 등의 입주물량은 30만가구에 육박한다. 향후 이 지역 교통상황은 거의 재앙 수준일 것이다. 검단신도시도 마찬가지로 인천 지역에는 현재 도시재생사업, 경제자구구역 내 3개 신도시, 김포신도시 등이 활발히 개발되고 있다. 한강 건너편의 파주신도시까지 합하면 역시 수십만가구의 주택공급이 예정돼 있다.
신도시를 기존 기반시설에 기대어 포도송이식으로 개발하면 교통체증 등으로 에너지효율이 떨어지고 녹지의 체계적인 보전 및 개발도 어려워진다. 전반적인 사회적 부담이 증가하기 때문에 보다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하다. 신도시 개발계획을 수도권 전체 개발에 대한 밑그림 없이 동시다발적으로 내놓으면서 특정 시기에 공급이몰려 시장을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 전국 평균 주택보급률이 이미 100%를 넘어선 상황에서 한곳에 이렇게 유사한주택공급사업을 동시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주택 공급수단으로서의 신도시 개발을 지양하고 기존 도시나 신도시를 자족기능을 갖춘 콤팩트시티(고층·고밀화도시)로 개발해야 한다. 주택 위주의 신도시로 지으면 베드타운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으므로 산업기반을 갖춘 자족 가능한 콤팩트도시로 개발하는 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미 콤팩트시티를 표방하고 추진되는 신도시 개발 예정지도 구체적으로 목표에 맞게 진행되는지 다시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신도시가 들어서는 지역별로 광역개발계획을 세워 신도시별로 연계해 특성을 살린 자족도시로 각각 개발해야 향후 공동화로 인한 유휴시설 낭비를 없앨 수 있다. 도심 용적률을 높이는 등으로 도심 활성화사업을 추진해 전반적인 부동산시장을 안정화시키야 한다. 정부가 당초 추진했던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을 늘린다는 기본 자세로 새로 개발할 신도시는 100년 대계의 기초 아래 중장기적이며 광역적인 개발을 통해 도시의 자족기능을 완벽히 갖추면서도 도시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초점을 둬야 한다.
도로 등 필수적인 기반시설도 부족해 인근도시로 이동하는 데 따른 교통정체는 신도시의 대명사가 돼 버렸다. 잠자는 도시(베드타운)가 된 지도 오래다. 신도시 안에 생산시설이 없다 보니 경제가 집중된 서울로 이동하기 위해 산을 뚫어 출퇴근용 도로를 놓고 신도시 거주자들은 아까운 시간을 도로에다 버리고 있다. 신도시가 난개발과 자원낭비를 부추기고 있다.
신도시 개발 과정에서 나타나는 부동산투기와 집값 불안은 경제를 더욱 어렵게 한다. 개발정보가 사전에 유출돼 땅투기가 일어나는 일은 아직도 일어나고 있다. 정부는 경기 화성 동탄2신도시 예정지 일대에 부동산투기가 나타나자 신도시 건설계획을 앞당겨 발표하기도 했다. 집값 안정을 위해 건설하는 신도시가 오히려 집값의 급등락도 부추기고 있다. 1기 신도시가 추진된 1988∼90년 3년간 전국의 집값은 평균 50% 올랐다. 그러나 신도시 입주가 시작된 91년부터는 떨어지기 시작해 입주가 마무리 단계인 95년까지 5년 동안 줄곧 하락했다.
대규모 신도시 개발에 대한 기대감에다 보상비가 풀려 인근 집값이 뛰고 입주시점이 되면 주택공급이 과도하게 늘어나 집값이 급락하는 악순환이 일어나는 것이다.참여정부 5년간 신도시 등 공공사업에 풀린 87조원의 보상금은 땅투기로 이어져 아파트 분양가격을 올리는 주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신도시가 난개발에 집값 불안 등을 야기하는 것은 신도시가 말뿐인 계획도시가 되고 있어서다. 기존 택지지구나 신도시에 잇대어 짓는 포도송이식 개발이 되다 보니 환경파괴는 물론이고 도로와 같은 필수시설도 땜질식으로 덧붙여지고 있다.
신도시 간 역할도 분담되지 않아 연계성이 떨어지고 시설도 비슷하게 중복되고 있다. 실제 수도권 서북부 지역에 총 5000만㎡ 가까운 자족기능의 주거벨트로 조성되는 인천 청라∼검단∼김포한강신도시의 경우 밀집돼 있지만 이들 3개 지구 사이에는 교통과 상업, 문화, 여가 등을 포괄적으로 담은 통합개발계획이 없이 각기 달리 추진되고 있다. 수도권 전체 인구계획 및 분포 등에 따라 수도권 전체 개발계획을 세우고 도로, 철도 등 인프라를 갖춘 뒤 신도시를 지어야 하지만 인구나 시설배치 등이 없이 인천검단과 세교처럼 가용용지를 넓혀서 짓는 졸속 신도시는 난개발을 피할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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